본문 바로가기주메뉴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한국국학진흥원
   학교교육>서원>설립
URL

서원

설립
조선 최초의 사액서원 소수서원 내 강학당

조선 최초의 사액서원 소수서원 내 강학당

  • 조선 최초의 사액서원 소수서원 내 강학당
  • 소수서원을 세운 주세붕
이전 다음

향교 역할을 대신해 선현 제향과 교육을 위해 설립된 서원 유교를 치국의 이념으로 내세웠던 기본 방침에 따라 조선은 건국 초기부터 모든 사람들을 유교 이념으로 교화하고자 하였다. 지방의 경우 일읍일교(一邑一校)의 원칙에 따라 전국 곳곳에 설립된 향교가 그 역할을 수행하였으나 중기를 지나면서 점차 교육 기능을 상실하고 서원에 그 자리를 넘겨주게 되었다. 이렇게 지방의 관학이 부진한 상황에서 16세기 이후 선현에 대한 제향(祭享)과 교육을 위해 지방에 설립된 사설 교육기관을 서원이라고 한다.

중국은 우리보다 앞서 서원의 체계를 잡아 이미 당나라 시대부터 설립·운영되었다. 송나라 때 주자의 백록동서원이 설립되면서 교육기관으로서의 체계를 잡게 되었고, 이후 원나라와 명나라를 거치면서 크게 발전하였다. 비록 주자가 세운 백록동서원을 참고하여 백운동서원(후에 소수서원)을 창립하였다고는 하나 우리나라의 서원은 중국과는 다소 차이가 난다. 중국의 서원이 관인 양성을 위한 준비기구로서의 성격을 갖는데 비해 조선의 서원은 선현 제향과 학문 연구를 위해 설립되었고, 더 나아가 향촌 자치기구로서의 기능까지 수행했기 때문에 조선의 서원과는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서원의 효시 백운동서원 사설 지방 교육 기관을 지칭하는 기구로 서원이 자리를 잡기 이전에도 서원과 유사한 명칭으로 서재(書齋), 정사(精舍), 사우(祠宇), 향현사(鄕賢祠) 등의 명칭이 있었는데, 이는 우리나라 서원의 기원 및 성격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미 조선 초기부터 개인들이 운영하던 서재나 정사를 중심으로 교육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졌고, 정부에서도 이를 적극 장려하였다. 이러한 시설들이 직접적으로 서원의 설립으로 연결되지는 않았지만, 서원이 설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서재나 정사를 통한 교육 활동 외에 사우나 향현사와 같은 시설을 두어 제사를 담당했다. 이들은 별개의 시설로 존재하면서 교육과 제향의 각기 다른 기능을 수행하였다.

이러한 조직들이 중종 대에 이르면서 유교이념의 보급이라는 국가 시책, 정치적 영향으로 인한 사림파의 형성, 지방민 자체적인 교육적 욕구 등으로 두 가지 기능을 통합한 서원으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결국 우리가 서원이라고 부르는 교육기관은 강학과 제향 기능이 결합된 교육기관이며, 이러한 기준에서 주세붕이 세운 백운동서원을 서원의 효시로 보게 된 것이다. 백운동서원이 설립된 시기는 1542년(중종 37)인데 이때는 사묘가 완성된 시기이고, 이듬해에 강학공간이 추가로 설치되었다. 대부분의 연구서에서 서원의 기원을 1543년(중종 38)으로 보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서원은 초기에는 백운동서원이 설립된 경상도 순흥(지금의 풍기) 지역을 중심으로 주로 경상도 지방에 설립되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호남과 경기 지역 및 북부 지방으로 확산되어 인조 대에는 거의 전국적으로 설립되었다.

이전 페이지로 이동 | 다음 페이지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