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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교육 사상가

이황(李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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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 이황 동상

퇴계 이황 동상 퇴계 이황이 학문을 연구했던 도산서당

생애 이황(李滉, 1501~1570)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이다. 본관은 진보(眞寶), 자는 경호(景浩), 호는 퇴계(退溪)이다. 좌찬성 이식(李埴)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는데, 생후 7개월 만에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 박씨 밑에서 총명한 자질을 키웠다. 이황은 어려서 이웃 노인에게서 『천자문』을 배웠고, 12세에는 숙부 우에게서 『논어』를, 14세부터는 혼자서 학문에 정진하여 20세에는 『주역』까지 독파하였다.

학문 이황은 다소 늦은 34세에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에 진출한 후 요직을 두루 거쳤고, 자원해서 외직에 나가기도 하였다. 49세에 풍기군수직을 사임하였고, 이때부터는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관직을 기피하고 학문 연마와 후진 양성에 매진하였다.
이황은 태극론(太極論), 이기론(理氣論), 심성론(心性論) 등 유학의 철학적 측면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에 몰두하였고, 특히 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을 주장하면서 사단칠정(四端七情) 논쟁을 통해 한국 성리학의 학문적 수준을 높이는 데 기여하였다.
유학의 본질을 규명하는 철학적 노력에 많은 힘을 쏟으면서도 유학의 근본정신인 인(仁)의 구현에도 많은 관심을 가졌다. 이를 위한 구체적인 방법으로 ‘거경궁리(居敬窮理)’를 제시하였는데, 생활 속에서 실천을 통해 인을 구현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교육 이황은 교육 목적을 일차적으로 윤리적인데 두면서 인(仁)을 체득한 성현이 되도록 하는데 있다고 보았다. 때문에 배우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가 먼저 뜻을 바로 세워 성인이 될 것을 스스로 기약해야 한다고 했다. 교육 과정으로는 『주자대전』, 『심경』, 『태극도설』 등을 중요시했으며, 그 다음으로 『소학』, 『근사록』, 『효경』, 『가례』, 『사서』 등을 중요시하였다. 특히 주희에 심취하여 『주자대전』을 잘 익히면 사서의 이해가 더욱 쉬워진다고 하여 평생을 『주자대전』의 연구에 바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편 이황은 교육 방법으로 거경(居敬)과 궁리(窮理)를 근본 원리로 삼았다. 그 중 경은 마음을 주재하여 안으로 도덕적 심성을 배양하고, 밖으로 행동 속에서 악의 발현 가능성을 억제하는 수양론적 원리이며, 궁리는 사물의 이치를 깨달아 더 이상 의심이 없도록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