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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 교재 태산집요의 언해본

의학 교재 태산집요의 언해본

  • 의학 교재 태산집요의 언해본
  • 전의감 터 표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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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학문 조선시대 의학은 사람의 생명과 직결된 학문이었기 때문에 다른 전문 학문보다도 의학과 역할을 더 중요시했다. 조선시대 의학 교육이 체계적으로 실시되기 시작된 것은 세종대~세조대였다.

조선시대 의학 교육은 중앙에서는 전의감(典醫監), 혜민서(惠民署), 내의원에서 그리고 각 지방 관아에서 실시하였다. 이를 통해 조선시대 의학 교육이 독립된 교육 기관에서 실시한 것이 아니라 의료를 담당하는 기관에 부설하여 실시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전의감은 왕을 비롯한 궁의 의료를 담당하는 의료 기관이었으며, 혜민서는 의녀 교육을 담당한 기관이었고, 왕실 의료 기관인 내의원도 일정한 의학 교육을 실시했다.
지방 의학 교육은 각 도마다 의원을 설치하고 교수 1명씩을 파견하여 교육을 실시했다. 그리고 부, 목, 군, 현 등 3백여 지방 관청에도 규모의 차이는 있었으나 의원 양성 교육 기관이 설치되었다.

투철한 정신과 높은 교양이 요구되는 의학 교원 의학 교육을 담당한 교원은 의학 교수와 의학 훈도가 있는데 이들은 전의감 2명과 혜민서 1명이었다. 하지만, 이들 관청의 관원 중에는 의과 출신자가 있었으므로 전의감에서 5명, 혜민서에서 1명 역시 의학 교육에 참여했다. 그리고 전의감 50명, 혜민서 60명의 전직 위원도 환자 치료나 제약을 담당한 의원이었으므로 학생의 임상지도나 학습에 참여했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담당 교원은 전임 교원인 의학 교수와 의학 훈도를 포함하여 약 120명에 달한다. 이외에 문신들로 하여금 의학 교육을 담당케 한 경우도 있었는데 이는 의원이 기술적으로 정통해야 할 뿐 아니라 투철한 정신과 높은 교양이 요구되는 영역이기 때문이었다.

의학과 침구의로 나뉘는 의학 교육 과정 과거를 위한 의학 중앙 교육 과정으로는 의학(醫學)과 침구의(鍼灸醫)로 나눌 수 있다. 의학 과목에는 『찬도맥』, 『동인경』, 『직지맥』, 『득효방』, 『부인대전』, 『화제방』, 『본초』, 『태산집요』 등이 있고, 침구의 과목에는 『찬도맥』, 『침경지남』, 『침경적영집』 등이 있다. 이는 의학원론, 진맥, 조제, 응급치료, 부인병 등 의학의 모든 분야를 총망라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반면 지방에서는 각 도의 관찰사로 하여금 적당하게 인출하여 나누어주도록 법제화한 의서를 활용하였으며, 이 이외의 교과목이 어떤 것이었는지 분명하지 않으나 지방 의학 교육의 목적이 중앙 진출보다는 지방 의료에 종사할 수 있는 의원의 확보에 있다고 볼 때 그 과정은 중앙에 비해 다소 간단했을 것으로 보인다.

습득, 기술의 수련 등의 의학 교육 방법 의학의 교육 방법은 의서의 습득, 기술의 수련, 학업과 기술의 평가 등을 중심으로 살펴볼 수 있다. 의서의 습독은 일제 강독이 아니라 성균관이나 향교의 학생처럼 개별 학습이 이루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학생 성원이 수시로 변동되기 때문에 무계획적인 자유방임 상태가 아니고 엄정한 과정과 개인별 독서 기록을 남기기도 하고, 출사를 독려하기 위해 취재나 응시에 원점법(圓點法, 성균관 유생의 출결석을 점검하기 위하여 찍던 점)을 적용하기도 했다. 기술의 수련은 진맥, 조제, 침구 등의 실습 훈련과 경험 많은 의원의 간병 띠에 수행하여 임상을 견습하는 방법 등이 있었다. 전의감과 혜민서의 생도나 의서습독관은 대부분 수습 의원의 성격을 띠고 있었으므로 정규 의관의 조수로서 실습의 기회를 충분히 부여했다.

의학 교육 평가는 의학에 대한 전문 지식과 의술에 대한 전문 기술로 나누었다. 의학에 대한 학업 평가는 사맹삭(四孟朔, 1월, 4월, 7월, 10월)이나 혹은 매월 정기적으로 성적을 평가하여 그 결과를 기록하고 통보하여 우수한 사람에게는 관직의 임용이나 승진 특전을 주었고, 지방 의생이나 의녀에게는 상품이나 급료를 올려주었다. 반대로 성적이 불량한 학생에게는 처벌이 따랐다. 한편 의술에 대한 평가는 진맥, 점혈, 조제 등 실제 기능을 고시하여 승진과 포상의 자료로 삼았고, 교관의 경우에도 교육 성과가 부진할 경우 징계나 문책을 담당했다.

여성을 위한 의학 교육으로서 의녀 교육 조선시대에는 여성에게 의녀 교육을 실시했는데 의녀란 오늘날의 여간호사나 여의사에 해당한다. 이러한 의녀 양성은 의녀로 하여금 여성에 대한 의료를 담당하게 하여 진료 때 남녀간의 불편한 점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기는 했지만, 남녀 간의 접촉 방지를 위해서가 그 주된 이유였다. 이 때문에 의녀 교육은 다른 분야에 비해 일찍 이루어졌다. 의녀 교육에서 먼저 여성들은 『부인문』, 『산서』를, 다음으로 『직지맥』과 『찬도맥』 등의 진맥법 및 『가감사십방』과 『화제방』 등의 조제법을 배웠고, 마지막으로 『부인문』 등의 침구법을 배웠다. 의녀는 매월 읽어야 할 책에 대해 고강(考講)을 실시하여 성적을 기록했고, 매월 성적우수자 3명을 알리고, 월급을 지급하며, 3번 불통한 경우에는 혜민국의 다모(茶母)로 삼아 징계했다. 한편 유능한 의녀를 특별히 양성하기 위해 어리고 총명한 사람을 별도로 뽑아 교관에게 매일 가르치게 하고, 뛰어난 의녀를 내의원에 보내 특별히 교육받도록 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친 유능한 여성은 왕실 여성에 대한 의료 행위를 담당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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