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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교의 제향 공간 양산향교 대성전 정면

향교의 제향 공간 양산향교 대성전 정면

  • 향교의 제향 공간 양산향교 대성전 정면
  • 향교의 제향 공간 양산향교 대성전 현판
  • 향교의 제향 공간 양산향교 동무
  • 향교의 제향 공간 양산향교 서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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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를 통한 교화 기능의 지속 조선 중기 이후 향교는 교육 기능이 쇠퇴하였지만 선현에 대한 제사를 통한 교화 기능을 지속할 수 있었다. 기본적으로 조선시대에는 선현에 대한 공경이 강조되기도 하였지만, 향교의 경우에는 성균관과 달리 예비 관리를 양성하는 것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유교적 원리에 의해 운영되는 사회질서에 순응하는 사람들을 만들고자 하는 의도가 더 강하였기 때문에 향교에서의 제향은 매우 중요하였다. 향교에서 가장 대표적인 제사는 석전제였고, 향교의 석전제는 제사에서의 역할을 담당하는 사람들의 구성과 규모에서만 차이가 날뿐 성균관과 동일한 시기에 동일한 형식으로 거행되었다.

향촌 자치기구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향교의 석전제 향교에서 석전제가 비중 있는 행사로 존속될 수 있었던 이유는 석전제 자체보다는 석전제가 갖는 부가적인 기능 때문이기도 하였다. 석전제에는 의례적으로 지방관이 헌관으로 참여하였고, 석전이 끝나면 지방의 유림들이 향촌 사회의 여론을 수렴하여 지방관에게 전달하고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하였다. 따라서 석전제를 통해 향교가 향촌 자치 기구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기 때문에 지방의 유림들은 석전제를 중요시 하였던 것이다.

또한 향교는 단순한 교육기관을 넘어 향촌기구로서 정치를 논하는 자리였고, 교임은 바로 향교를 대표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그들이 차지하는 사회적 위상은 상당히 높았다. 따라서 교임으로 석전제에 참여하는 것은 그들의 사회적 위상을 확인해 주는 행사였고, 지방에서 확실하게 자신들의 위치를 결정짓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석전제가 끝난 뒤 교임을 선출했기 때문에 지방 유림들의 석전에 대한 관심이 클 수밖에 없었고 중요한 행사로 존속될 수 있었던 것이다.

향교에서 이루어지는 또 다른 정기 제례 삭망분향 향교에서 이루어지는 또 다른 정기적인 제례에는 삭망분향(朔望焚香)이 있다. 삭망분향은 매월 초하루[朔]와 보름[望]에 신위에 올리는 제례를 말한다. 절차는 간단하였고, 교임과 유생만이 참여하는 약식 제례였다. 이외에도 신위를 일시 다른 곳으로 옮기거나 복귀시킬 때 올리는 고유제(告由祭)나 예기치 못한 재해를 당했을 때 올리는 위안제(慰安祭)와 같은 비정기적인 제례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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