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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교

설립
양산향교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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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산향교 대성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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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촌민의 교육과 교화의 중심 향교는 지방 교육을 활성화하고 유교 이념을 보급하기 위해 조선시대에 전국적으로 설립한 관학이었다. 유교 국가를 지향하던 조선이 건국 후 가장 중점을 두었던 부분은 국가 통치뿐만 아니라 일반 백성들도 유교적 원리에 따라 생활을 해 나가도록 하는 것이었고, 다양한 형태의 교육을 통해 지향하는 바를 달성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한 조치로 국가적 차원에서 성균관을 설치, 운영하였고 개인들의 서재를 중심으로 한 교육 활동을 적극적으로 장려하였다. 향교의 전국적 확산은 그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추진되었다고 할 수 있다.

조선시대 향교의 설립과 전파는 고려 말기 추진된 향교 정책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졌다. 고려 인종대에 이미 형식적으로 전국 단위로 설립되어 운영되었으나 무신난 이후 전반적인 교육 침체 상태에서 향교 교육도 부진을 면치 못하였다. 그러다가 고려 말기 공민왕대에 이르러 교육 중흥 정책을 취하면서 향교 교육도 서서히 복구되었다. 1391년(공양왕 3)에는 각 도의 목(牧)과 부(府)에 유학 교수관을 파견함으로써 향교 부흥의 의지를 보였다. 그러나 곧 조선이 건국되면서 이러한 노력은 결실을 맺지 못하고 조선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조선 건국 후 유교 이념을 보급하기 위해 국가적인 차원에서 많은 노력을 하였다. 성균관이나 학당 같이 서울에 위치한 소수의 교육기관은 국가가 직접 관리를 할 수 있었으나, 전국에 걸쳐 국가가 교육 사업을 직접적으로 주도하고 관리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따라서 주요 행정구역이나 독자적으로 향교를 설립할 수 없는 지역에는 교관을 파견하여 직접적으로 관리하였고, 기타 지역은 해당 지역 수령에게 주요 임무로 부과하여 국가의 직접적인 부담을 줄이면서 향교 교육의 효율을 꾀하였다. 학교의 흥폐로 수령의 근무를 평가하는 상황에서 수령은 향교 교육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태조 즉위 초부터 관심을 가지고 시작된 지방 교육은 성종 때에 이르러 전국의 군·현에까지 향교가 설치되면서 본 궤도에 오르게 되었고, 향교는 향촌민의 교육과 교화의 중심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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