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주메뉴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한국국학진흥원
   전문교육>종류>외국어
URL

종류

외국어
한어 교재 박통사

한어 교재 박통사

  • 한어 교재 박통사
  • 사역원 터 표지석
이전 다음

조선시대 4대 외국어 교육 조선시대 외국어 교육은 사역원(司譯院)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사역원에서 교육했던 4대 외국어에는 한학(漢學, 중국어), 몽학(蒙學, 몽고어), 여진학(女眞學, 청어), 왜학(倭學, 일본어)이 포함된다. 각각의 외국어는 한학청(漢學廳), 몽학청(蒙學廳), 청학청(淸學廳), 왜학청(倭學廳)이라 불리는 각 관청에서 외국어 학습을 전담하였다. 또 우어청(偶語廳)이라 하여 온종일 외국어로만 대화하는 순수 회화 교실도 있었다. 당시 제1외국어가 중국어인 만큼 사역원에서도 한학청의 규모가 가장 컸다.

한학은 교수 4명과 훈도 4명이 학생 30명을, 몽학은 훈도 2명이 학생 10명을 가르쳤으며, 여진학은 훈도 2명과 학생 20명이, 왜학은 훈도 2명과 학생 15명이 정원이었다. 한편 외국과의 교류가 필요한 지방에서도 해당 외국어 교육을 실시했는데 한학은 평양, 의주, 황주에 역학 훈도를 두어 교육하였고, 각 지방마다 학생은 30명이었다. 왜학은 제포와 부산포에 각10명씩이었고, 감포가 6명의 학생을 두었다.

사역원의 교육 담당자는 역어에 정통한 사람을 임용하였다. 때문에 사역원 관원 출신자를 채용하거나, 관원의 결원이 생길 경우에는 본업 경력자를 초빙했다. 이러한 임용에서 특이한 점은 역어에 능통하더라도 경학과 의리에 밝지 못한 자는 옳은 역관이 될 수 없다 하여 채용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경학에 밝은 문신을 임용했고, 귀화한 중국인이나 여진인 등 외국인을 채용한 경우도 있었다.

엄격한 사역원의 외국어 교육 과정 사역원의 교육 과정은 매우 엄격했다. 사역원 교육 과정에는 읽기에 해당하는 강서(講書), 쓰기에 해당하는 사자(寫字), 번역에 해당하는 역어(譯語) 3개 영역이 있었는데 사역원 학생들은 기숙사 생활을 하며 하루 종일 공부를 하고 매월 2일과 26일에는 시험을 쳤다. 3개월에 한 번씩은 지금의 중간고사나 기말고사에 해당하는 원시(院試)를 쳤고 수련 과정을 거친 후에는 잡과(雜科)를 치렀다. 문과처럼 3년마다 한 번씩 열리는 잡과 중 역관은 역과에 응시했고, 역과의 초시와 복시에 모두 통과해야 역관이 될 수 있었다.

실용성이 높은 외국어 교재 조선시대 외국어 교재로 먼저 중심 외국어인 중국어는『노걸대』와 『박통사』를 들 수 있다. 『노걸대』는 3명의 고려 상인이 말과 인삼, 모시를 팔기 위해 중국에 다녀온 과정에서 겪는 다양한 상황을 적어 놓은 책이다. 말을 사고파는 법, 북경에 도착하여 여관에 드는 방법, 조선의 특산물인 인삼을 소개하는 방법 등이 중국어로 소개되어 있다. 그야말로 실무에 필요한 실용 회화책으로 문장의 구성도 상당히 체계적이어서 한 페이지 안에 같은 단어를 반복해 계속 읽다 보면 자연스레 단어를 외우게 되어 있다. 이처럼 실용성이 높은 교재는 당시 사역원에서 4개 언어로 모두 번역되었다. 특히 몽고어 『노걸대』의 목판본엔 여러 차례 개편 때마다 오려 붙여 넣은 흔적이 남아 있는데 시대에 따라 언어가 바뀔 때마다 매번 수정과 보완을 거친 것이다.

『박통사』는 통사가 역관의 직책인 만큼 ‘박씨 성을 가진 역관’이라는 의미를 가진 책이다. 『노걸대』가 상인의 무역활동을 주제로 하는 ‘비즈니스 회화’에 가깝다면, 이 책은 고급 단계의 언어를 활용하여 중국 일상생활에 관한 것이 대부분이다. 전당포에서 돈을 빌리는 상황, 공중목욕탕의 요금과 때밀이, 차용증 쓰기 등에 이르기까지 중국 생활에서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내용들이 망라되어 있다.

한편 대표적인 일본어 교재로는 10여 년 간 일본에 머물다 돌아온 역관 강우성이 1676년(숙종 2)에 편찬한 『첩해신어』를 들 수 있다. 책은 ‘일본어를 빨리 해독하는 책’이라는 의미로 왜역관들이 왜관에서 일본인을 접대하거나 통신사를 수행할 때 대화들을 회화체로 엮은 것이다.

서도법과 회화 훈련 등의 외국어 교육 방법 외국어 교육의 효율성을 최대화하기 위해 다양한 서종법, 회화 훈련, 출석 독려, 공동 학습과 분담 지도, 엄정한 평가 방법과 누가 기록 등이 적용되었다. 서종법은 읽기 장려 교육 방법으로, 매일 또는 매월의 독서 목표량을 정하여 필독케 하며 그 평점과 독서 분량을 개인별로 적어, 독서의 정한을 어긴 자나 태만자는 처벌하고 실적이 우수한 자는 근평이나 승진에 반영하였다. 회화 훈련은 원활한 외교 실무 처리라는 사역원의 설립 목적 상 무엇보다 중시되었던 교육 방법이었다. 회화 훈련을 위해 사역원의 독서 강독은 전부 한음(漢音)으로 실시되었고, 원내에서 한어를 사용하게 함으로써 언어에 대한 숙달을 도모하였다.

1442년(세종 24)에는 이를 한층 강화하여 상하 동료 간의 대화는 물론 공사 회의에서 음식 기거의 일상용어까지 한어를 사용케 하였다. 이와 동시에 향어사용자는 그 정도에 따라 차지(次知)를 구속하며, 중범자는 형조에서 논죄하였다. 즉 논관은 파직한 후 1년간 채용 금지하고, 전함권지는 1년간 취재 불허, 생도는 정도에 따라 체벌을 실시하는 등 엄중한 조치를 취하였다. 또한 외국어 교육에서는 출석이 중시되었는데 출석 일수를 기록하여 무단 결석자나 핑계를 이유로 출석하지 않은 자를 처벌하였다. 학습 형태는 상호 질의와 격려에 유리하도록 교관, 학생, 관원이 한자라에 모여 강독하는 공동 학습과 함께 개별 학습을 위한 분담지도자법도 적용되었다.

이전 페이지로 이동 | 다음 페이지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