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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성균관

제향
성균관의 제향 공간 대성전

성균관의 제향 공간 대성전

  • 성균관의 제향 공간 대성전
  • 석봉 한호의 필적인 성균관 대성전 현판
  • 유현들의 위패를 나누어 모셨던 동무
  • 유현들의 위패를 나누어 모셨던 서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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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업만큼 중시 되었던 제례 신라시대에 국학에 문묘시설이 들어오면서부터 교육기관에서 학업만큼 중요시 되었던 것이 각종 제례였다. 즉 성현들을 공경하고 예의를 표시하는 것이 공부만큼 중요하였고, 따라서 공식적인 교육기관에서는 강학시설과 함께 문묘시설을 구비하는 것이 필수였다.

성균관에서 치뤄지는 제례 중 가장 비중있고 중요한 것이 석전제(釋奠祭)였다. 석전제란 문묘(文廟)에서 공자(孔子)를 비롯한 4성(四聖) 10철(十哲) 72현(七十二賢)을 제사지내는 의식이다. 조선의 성균관에서는 한국의 성현들을 추가하여 봉안하고 석전제를 지냈다. 음력 2월과 8월의 상정일(上丁日, 첫째 丁日)에 거행하기 때문에 상정제(上丁祭)·정제(丁祭)라고도 하고, “채(菜)를 놓고[釋], 폐(幣)를 올린다[奠]”는 의미에서 석채라고도 하였다.

성균관 석전제 절차 제사는 봉상시(奉常寺)가 주무관청이 되어 일을 관장하였고, 예조판서·대사성·사성이 각각 삼헌관(三獻官)을 맡았다. 장악원(掌樂院)의 악생들은 제에 필요한 음악을 담당하였다. 기일에 앞서 성균관 청소 및 각종 비품들을 점검하고 호조와 예조의 관리가 나와 미리 점검하였다. 또한 입청재(入淸齋)라는 별청을 만들어 제에 참석할 사람들이 묵을 수 있도록 하였다. 본 행사 전에는 실제와 똑같이 예행 연습을 하며 승지가 최종 점검을 한 후에 임금에게 보고 하였다.

제사는 축전오각(丑前五刻, 오전 11시 50분)에 시작되어 절차에 따라 궤향(饋享, 제삿밥을 이는 절차), 초헌(初獻, 신위에 첫 번째 술을 올림), 아헌(亞獻), 종헌(終獻)이 이루어지고, 삼헌이 끝나면 음복(飮福)을 한다. ‘철변두(徹籩豆)’라는 집례자의 말에 따라 제기를 거두어들이고, ‘망예(望예)’라는 구령에 맞춰 북쪽을 향해 나갔다 본 위치로 돌아와 절을 올리고 제를 마치게 된다. 제향이 끝나면 이어 학생들의 학업을 독려하는 임금의 시학(視學)이 이어지고, 임금이 궁으로 돌아가면 모든 행사가 마무리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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