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사상가
이이(李珥)
생애 이이(李珥, 1536~1584)는 조선 중기의 학자이자 정치가이다.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숙헌(叔獻), 호는 율곡(栗谷)이다. 이미 3세 때 말을 배우면서 동시에 글을 읽었고, 8세에는 한시를 읊을 정도로 문학적 재능이 뛰어났다. 13세에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이후 29세에 처음 벼슬길에 나갈 때까지 아홉 차례나 과거에 장원급제하여 ‘구도장원공(九度壯元公)’이라 불리기도 하였다.
학문
29세에 호조좌랑으로 관직에 진출한 후에 요직을 두루 거치면서 관리로서의 능력과 열정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모시던 임금이 성군이 되도록 조언하였고, 국정의 폐단을 분석하고 그에 대한 대안까지 마련하여 관리로서의 책임을 다하였다. 특히 백성들을 올바로 교화시키기 위해서는 교육에 힘써야 한다는 생각에서 학교 교육 진흥을 위한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였다.
관리로서 현실 정치에 관심을 갖고 많은 개혁안을 제시한 것은 진리는 현실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는 그의 기본 사상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사상적 경향은 그의 학문에도 그대로 나타나는데, 이황의 이원론적 이기론[理氣互發說]과 달리 이이는 이와 기를 본래 떨어질 수 없는 하나로 인식하며 일원론적 이기론[氣發理乘說]을 펼친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의 사상은 이론과 실제를 중시하는 학행일치의 경향을 보여준다.
교육 이이는 학문이란 일상생활에서 행하는 일이 하나하나 이치에 맞도록 하는 것이라고 보아, 교육 목적을 성인이 되는데 있다고 보았다. 그에 따르면 이치에 맞느냐 여부는 스스로 알 수 없기 때문에 이치를 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학문의 요점을 궁리, 거경, 역행이라 했는데, 이는 다시 말하면 지(知)정(情)의(意)가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참된 학문이 가능하고 궁극적으로 참된 인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교육 과정으로는 『소학』, 『대학』, 『논어』, 『맹자』, 『중용』, 『시경』, 『예경』, 『서경』, 『주역』, 『춘추』 등을 순서대로 공부하고 다음에 『근사록』, 『가례』, 『심경』, 『이정전서』, 『주자대전』, 『주자어류』와 그 밖의 성리학 서적을 정독한 후 남은 힘이 있을 경우 역사를 읽도록 했다. 교육 방법으로는 입지(立志)와 성경(誠敬)을 바탕으로 한 지행합일, 내면적 동기, 반복 학습을 통한 점진적 발전, 개인차를 고려한 적절한 방법의 선택 등을 강조하였다.